작은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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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로 해직된 최혜원 교사

 

 

강서희 heegin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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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그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건을 알아야 한다. 하나는 일제고사에 반대한 교사들이 해직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강제 철거에 맞서 싸우고 있는 두리반이다.

2008년 10월,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치러졌다. 말이 많았다. 전국의 학생들을 하나의 시험지로 평가하는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사들이 있었고, 2008년 12월, 서울시교육청은 체험학습을 보내는 등 일제고사에 학생, 학부모의 자율권을 부여한 교사 7명을 해임했다. 그리고 2010년 1월, 7명의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한 해임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항소했고, 아직까지 이들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최혜원 교사.

매주 금요일, 두리반(홍대 앞 ‘작은용산’이라고 불리는 길가에 있는 식당으로 현재 강제철거에 맞서 농성 중이다)에서는 ‘칼국수음악회’가 열린다. 이곳에는 홍대 앞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재미난 행사가 많이 열리는데, 칼국수음악회 말고도 월요일에는 하늘지붕음악회, 화요일에는 푸른영상이 준비하는 영화상영, 목요일에는 촛불예배, 토요일에는 인디밴드들이 만드는 ‘사막의 우물, 두리반’이 마련되어 있다. 그 중 ‘칼국수음악회’는 평화캠페인, 용산집회 등 길거리에서 주로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이 출연하는 공연이다. 그리고 요즘 칼국수음악회를 진행하는 사람이 ‘도둑괭이’다.

그리고 최혜원 교사와 도둑괭이는 동일인이다. (사실 도둑괭이는 반 아이들에게 불리는 이름이기도 하니 학교 밖에서만 특별히 도둑괭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녀는 왜 교사가 되었는가?

최혜원 교사가 해고된 시점은 그녀의 교사생활 3년 차였을 때다. 교사로 부임된 첫해부터 담임교사를 해왔고, 세 번째 담임교사로 만으로 3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녀는 학교 밖으로 쫓겨났다. 일제고사로 아이들을 줄 세우고 싶지 않다는 내용을 ‘담임 편지’를 보냈고, 첫째 날 7명의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을 승인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새 학기를 시작하거나 일이 있을 때마다 종종 쓰던 ‘담임편지’였는데 그것은 교장이 승인하지 않은 가정통신문이 되어버렸고, 언론은 체험학습을 승인하고 교실에서 시험 감독을 한 교사를 두고 마치 체험학습 간 아이들을 인솔한 교사처럼 보도했다.

“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셨던 남상욱 선생님의 영향이 가장 커요. 남상욱 선생님이 나에게 해준 모든 것들을 나도 아이들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었거든요. 선생님이 우리에게 알려준 ‘꼴찌를 위하여’, ‘바위처럼’, ‘작은 연못’ 이런 노래를 아이들과 함께 부르고, 디비디비딥 게임도 하고, 친구 같은 선생님이면서도 따뜻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해직되기 몇 달 전에 선생님을 만났는데, 학교의 비민주적인 모습에 대해서 토로하니까 “혜원아, 전교조는 가입했니?”라고 말해주시는 선생님이었는데, 해임되고 첫 기자회견장에 두루마기를 입고 오셔서 제 뒤에 서계셨는데 얼마나 든든하던지….”

학생시절 혜원 쌤은 ‘권위에 저항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튀지 않고 성적이 좋은 편에 속했지만 지나치게 체벌하는 교사에게 대들어서 학생부에 끌려간 적도 있는 정의로운 학생, 우유 배달하는 아빠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학교 안을 돌아다니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허가 산동네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마음은 풍요로운 어린 시절.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어쩌면 남상욱 선생님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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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해임이 되었는가?

“일제고사가 있었던 첫날 7명이 체험학습을 갔어요. 아이들을 배웅하고 교실로 들어와서 감독을 했죠. 그런데 학교가 난리가 났어요. 교장이 7명의 아이들 집에 전화해서 부모들에게 ‘군대를 보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동생도 이 학교에 다녀야 하지 않냐’ 등의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받지 않는 집에는 찾아갔다고 하더군요.”

길동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은 혜원 쌤은 여느 교사들처럼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였다. 역사 수업을 위해 책상을 다 밀고 교실바닥에서 신문지를 깔고 원시인 체험을 하는, 집으로 아이들을 초대해 감자 캐고 상추 뜯고 고기를 구워 먹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힘을 내는 그런 교사였다. 그래서 해임 결정이 나고 아이들이 정말 속상해 했다. 아이들은 칠판에, 종이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고, 다음아고라를 통해 담임의 징계가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의 농성은 111일 동안 이어졌다. 혜원 쌤도 농성장에서 겨울을 보냈다. 농성 첫날에는 아이들 6명이 찾아와서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어느 날은 자고 일어나니 침낭 위로 눈이 5센티미터가 쌓여있더라고요. 떡국도 교육청 앞에서 먹었고. 각 지역 지회에서 당번제를 두고 농성장에 지지방문을 왔는데, 전국 특산물은 다 먹어본 거 같아요.” 2009년 1월 1일, 보신각 앞에서 캠페인을 하다가 새해 첫 연행자로 보도되기도 했다.

농성기간 중에 반 아이들의 졸업식이 있었다. 교장은 혜원 쌤에게 “손님처럼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1년 동안 정든 아이들을 그냥 손님처럼 보낼 수는 없었다. 졸업식을 기획하고, 아이들에게 직접 상장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기념이 될 만한 것으로 핸드폰에 달 수 있는 핑거앨범을 제작했다. 졸업식 날 아주 이르게 학교에 갔고, 교실을 노란풍선 200개로 장식을 하고 1년 동안 찍어둔 1000여장의 사진을 교실에 걸었다. 아이들 사진으로 만든 뮤직비디오도 보고, 졸업장도 손수 쥐어줬다.

결국 해임처분 취소 청구 소송은 1년 만에 승소했다. 이들이 해임된 다음에 있었던 일제고사(2009년 3월)에서 체험학습을 보낸 교사들은 정직처분 당했는데, 그에 비해서 너무 과하게 징계가 나와 승소는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항소, 상고심까지 진행이 되면 학교로 돌아가는데 3년은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왜 두리반에 갔는가?

요즘 혜원 쌤은 도둑괭이로 열심히 살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라디오21에서 ‘혜원의 발칙한 라디오’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던 중 ‘두리반 소식’을 들었다. 취재를 하다 사람들과 친해졌고, 이제는 칼국수 음악회 사회를 보고 있다. 사회를 보면서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도둑괭이는 “내가 잘 쓰일 수 있는 곳에서 뭔가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두리반 싸움은 철거 싸움이에요. 그런데 이곳 투쟁의 방식은 철거 싸움을 새롭게 쓰는 것 같아요. 4월 초에 있었던 100일 잔치도, 그렇고 5월 1일 노동절에 여는 51밴드 공연도 그렇고….”

51밴드 공연이란 프로젝트팀 <그룹51>이 마련한 ‘세계노동절 120주년 맞이 뉴타운컬쳐 제공 재개발 파티’(http://www.party51.com)를 말한다. 5월 1일 정오부터 새벽 3시까지 두리반에서 열리는 공연인데, 홍대 인디밴드들이 대거 참여한다.

그 외에도 전국에 있는 교대를 돌아다니면서 교대학생들에게 ‘새내기 교사의 성장기’라는 주제로 강의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인교대에서 강의를 했는데, 경인교대에서의 세 번째 강의란다. “세 번 모두 참석한 학생이 있었는데, 해직된 직후에 비해서 자신감 있고 당당한 모습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또한 어린이 그림책 집필도 마감해야 한다. 그러나 도둑괭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해직된 기간 동안 3개월 정도 자신을 위한 여행이라고. “해직이 저에게 교사가 아닌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라면 다양한 것들을 많이 보고 느끼고 싶어요. 그래서 복직했을 때 제 삶이 깊어져 있었으면 해요.”

도둑괭이의 지난날을 보면, 분명 나는 그녀를 한번쯤 만났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마주한 적이 없었다. 너무 늦게 도둑괭이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쉬움일 정도로, 그녀는 너무나 유쾌하고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복직했을 때 나는 그녀와 다시 인터뷰로 만날 것이다. 그때까지 도둑괭이의 앞날에 언제나 응원과 지지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