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생명이야기
강과 인간의 생명 관계
제1편 강과 인간의 파동 교환에 대하여
‘생명의 강’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쓴다. 강은 우리에게 생명의 기운을 준다는 뜻으로 쓰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어떻게 해서 강은 우리에게 생명의 기운을 줄까? 또 우리는 “강을 살린다”, 혹은 “강을 죽인다”라는 말을 종종 쓴다.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말이다. 하지만 강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강을 ‘살린다’고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강을 살리는 것이고 또 강을 죽이는 것일까? 그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을 설명하려면 우선 세 가지 기본적인 사실을 알아야 할 것 같다. ‘파동’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하며, ‘물’이 특별히 생명의 물질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은 어떤 구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사실 이 세 가지는 이 지상의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지금까지 <환경과 생명 이야기>를 이어오면서도 이 세 가지 전제가 모든 생각의 기초에 깔려 있었다. 이번 호에 ‘강과 인간의 생명 관계’라는 주제로 이야기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생명현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주제는 앞으로 3, 4회에 걸쳐 이어가야 할 것 같다.
첫 회에는 생명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파동’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겠다. 두 번째에는 인간의 생명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생각해보려 한다. 세 번째로는 ‘물’이 어떻게 해서 생명을 담아 이어주는 물질인지 이야기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한 번 더 이야기를 이어가서, 강이 인간의 문명과 어떤 관계였는지, 어떻게 해서 서로 생명의 관계를 이어왔으며, 어떻게 해서 서로를 파괴해갔는지 과거의 사례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강이 나를 살리고, 또 내가 강을 살린다’는 말의 뜻이 분명해지기를 기대한다.
자, 이제 강가에 앉아보자. 자갈과 굵은 모래가 섞여있는 모래톱 안쪽 커다란 밤나무 그늘에 자리 잡고 앉아 강을 본다. 강물은 표면에 잔주름을 잡으며 펼쳐져 이어간다. 물 위에 얹혀 천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잎사귀나 잔가지 같은 게 없었더라면 물살은 그냥 무늬만이고 강은 내 앞에서 움직임 없이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햇살이 물 위에 부딪쳐 더 강렬하면서도 더 평온하다. 바람이 불어 온 몸과 마음을 씻어준다. 강 너머 먼 산은 뭔가 내게 텔레파시로 말하려는 듯하고 가까운 나무는 그 신호를 전달하려는 듯 잎새를 움직인다.
그렇게 한동안 앉아 있으면 몸과 마음이 완전히 바뀐다. 강은 내게 “그래도 이 세상은 아름다워. 돌아가서 살아봐. 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내 몸에 생명의 기운을 채워준 것 같다. 강과 나 사이에 눈에 보이게 서로 주고받는 게 없었는데도 나에게는 확실히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세상에 원인 없이 일어나는 변화는 없다. 변화가 생기려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에너지가 작용해야 한다. 다만 그 에너지 중에서 인간이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잘 의식하지 못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 이 세상의 일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부분까지 다 포괄해서 설명해야 한다. 이럴 때 적절한 개념이 ‘파동’이다.
파동(波動)은 말 그대로 파도와 같은 움직임이다. 즉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높고 낮은 굽이를 이루면서 퍼져가는 움직임이다. 파동은 에너지가 있는 곳에서는 항상 발생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를 포함한 이 우주에는 파동이 가득 차 있다. 만물의 본질이 물질이냐 파동이냐 하는 것은 오랜 기간을 두고 현대의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현재 그 결론은 나 있는 상태다. 물질을 쪼개고 또 쪼개면 결국 파동이 남으니까, 결국 본질은 파동이라는 것이다. 물질이 아닌 ‘마음(意識)’,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영성(靈性)’ 같은 것도 파동으로 설명할 수 있으니까, 우주의 기본은 파동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강과 내가 맺는 생명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도 이 개념이 딱 들어맞는다.
파동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성을 갖는다.
우선 에너지가 있어야 존재한다. 잔잔한 물의 표면은 에너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여기 물 한 방울이 더해지면 그 질량과 운동 에너지로 물결이 생겨 동심원을 이루며 퍼져나간다. 다만 에너지 중에 인간의 인식으로 포착되는 에너지는 극히 일부이므로,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따라서 파동이 있다는 사실을 인간이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같은 파동끼리는 울림으로 어울려 서로 강해지며, 다른 파동끼리는 상쇄되면서 에너지가 약해진다. 이 두 가지 현상을 물리학 용어로는 ‘간섭’이라고 하는데, 전자는 ‘건설적 간섭’constructive interference, 후자는 ‘파괴적 간섭’destructive inteference라고 한다. 다음 그림에서 윗부분은 건설적 간섭으로 같은 파동끼리 합쳐졌을 때 두 배로 강해지는 모습을, 아랫부분은 파괴적 간섭으로 정 반대인 파동끼리 합쳐졌을 때는 에너지 제로 상태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파동을 구분해서 생각하려 할 때 ‘파장(波長)’이라는 개념을 쓰는데, 한 굽이에서 다음 굽이까지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다. 파장이 무한히 짧은 것에서 무한히 긴 것까지,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파동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파동은 파장, 즉 파동 한 굽이의 길이가 400~700 나노미터에 해당되는 것뿐이다. 그야말로 태산의 티끌만큼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파동에 대해 기본적인 사실들을 정리해보면 강과 내가 주고받았던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생명력이 강해졌다는 것은 나의 건강한 생명력과 비슷한 파동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파괴되지 않은 강가에 오래 앉아 있으면 생명력이 강해진다는 것은 나와 강의 파동이 비슷하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해부학과 종(種)분류학에 근거한 근대 생물학이나 뉴턴Newton식의 근대 물리학의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산과 강과 바람과 나무는 해부학적으로도 종 분류상으로도, 그리고 물리적 성질로 보아도 인간과는 너무 동떨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동학, 생물역학, 다윈의학과 같은 첨단의 과학의 개념으로는 온전하게 설명된다.
자연환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즉 강, 산, 바람, 나무, 모래 같은 것이 내는 파동 중에서 인간의 시각이 포착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강과 산이 전혀 다른 모양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과 인간의 전반적 파동은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에 그런 환경 속에 있으면 인간의 생명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우리가 내는 파동이 환경 구성 요인, 즉 강, 바람, 산, 나무에 변화를 주고, 또 이들이 우리의 파동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손상되지 않은 자연 속에 있으면 그 사람의 생명력도 강화되며 자연의 생명력도 그만큼 강화된다. 손상되지 않은 자연을 보면 저걸 어떻게 건드려서 돈을 버나 하는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 주변의 자연도 그 생각의 강도만a큼 위축될 것이며 그 사람도 자연에 의해 생명력이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집념만큼 몸도 쇠하고 마음도 피폐해질 것이다.
왜 손상되지 않은 자연이 인간의 건강한 생명력과 같은 파동인가, 그것을 인위적으로 개발해서 더 좋은 파동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다음 회에서 그 답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