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수 없는 처치에 놓인 아이들을 만나다
중국으로 자원활동 다녀온 권효성 씨
강서희(heegingi@naver.com)
방학 때 대학생들이 해외에 나가는 경우는 여행, 어학연수 그리고 봉사활동, 이 세 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봉사활동을 택한 권효성(서강대 중문 04) 씨가 있다. 그녀는 2주간 중국에 다녀왔다.
인연맺기운동본부를 통해 지난 1월 7일부터 21일까지 중국 운남 지역을 다녀왔는데, 그 지역은 한센병을 앓은 분들이 사는 마을로, 자원활동가들은 아이들과 놀이학습을 진행하고 화장실과 공중 목욕탕을 만드는 일을 도왔다.
그녀가 처음 중국에 다녀온 것이 지난 9월이었다. 인연맺기운동본부에서 활동하는 선배가 중국자원활동을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고, 휴학하고 중국어 공부하던 차에 중국자원활동에 흥미도 있었으며 중국어를 직접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에 다녀왔다.
“마을에 들어갔는데 그 때가 옥수수 수확기여서 옥수수를 따고 껍질을 까고 말리는 작업을 함께 했어요. 한국에서 농괄과 비슷할 수도 있는데, 그 마을은 한센병이 걸린 분들이 사는 마을이에요. 주로 그곳에서 자원활동가들이 지붕을 고치거나 길을 닦아요. 이번에는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진행했고, 중국인 참가자들도 교육대학교 학생들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가졌어요.”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
가는 길부터 험했지만 지난번 사전답사 때도 이번 캠프 때도 그녀는 좋은 기억이 많다. 중국에서는 ‘가깝다’고 해도 차를 타고 8시간을 달려야 했다. 식료품이 있어 들어갈 땐 차로 들어갔는데,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울퉁불퉁한 길을 내달렸다.
“외국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허물없이 지내는 것이 참 좋아요. 말이 통하지 않아서 고민을 참 많이 했는데, 중국사람들하고도 금방 친해져요.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고 해야 할까요? 지난 미니캠프 때 마지막 날 마을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강강술래를 했어요. 모닥불에 고구마를 구웠는데, 처음에는 고구마를 꺼내다가 중국 대학생에게 숯을 칠하는 척했는데, 그 때부터 서로 뛰어다니면서 이와 눈만 보일 때까지 서로 숯을 묻히고 놀았어요. 정말 가깝고 친해지는 기분이었죠.”
그렇다고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권효성 씨는 물갈이를 해서 고생했다. 게다가 중국 화장실은 칸막이가 없어서 처음에는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중국 대학생들이 화장실에서 ‘힘주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 당황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단다. 이번 캠프 때는 한국인 참가자 모두가 마지막 날 설사병이 걸려 짐을 싸면서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렸다고.
또 자원활동을 하면서 문화 차이도 많이 느꼈다. 중국에서는 닭요리를 하면 닭발과 머리도 함께 요리를 한다. 백숙을 끓였는데, 벼슬이 훤히 보이는 닭머리가 들어있어 깜짝 놀랐단다. 닭머리가 맛있는 것이라고 해서 보통 가장 큰 어른에게 드린다고 하는데, 식사 시간에 냄비 안에 있는 닭머리와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애썼다고.
또한 가스나 전기가 없어서, 주로 나무를 해서 생활해야 했는데 나무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다고. 그런데 당나귀와 돼지 등이 산을 타는 것을 보면서 캠프 기간 내내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최대의 유행어는 “돼지도 산타니 기운내자!”였단다.
학교가 없어져 배울 수 없는 처치에 놓인 아이들
권효성 씨는 캠프기간동안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은 매일 언어, 수학, 음악, 미술, 체육, 게임 이렇게 6교시로 진행됐다. 1교시는 한국인들이 맡은 체육수업시간이었는데, 국민체조로 수업을 시작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몸짓으로 줄을 서도록 보여줬다. ‘하나, 둘, 셋, 넷...’한국어로 구호를 붙이며 국민체조를 보여주는데 아이들이 곧잘 따라한다. 간단히 국민체조를 마친 후, 게임을 시작했다. 한국인 학생들은 주로 체육, 음악, 게임시간을 진행했다.
“‘산토끼’를 시작으로 음악수업을 했는데,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 모를텐데도 말똥말똥한 눈으로 선생님들의 입모양을 보며 열심히 따라 부르더라구요. 다음 시간에는 뜻을 알려주고 싶어서 짧은 중국어로 뜻을 설명해 주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이 앞에서 뭐하고 있는걸까?’라는 표정이었어요. 포기하고 그저 열심히 불러주는데. 한명 한명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부르자, 눈을 빛내며 더 열심히 따라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이렇게 수업에 대한 열의가 높은데, 이 작은 학교가 몇달내로 없어진다고 했다. 이 마을의 학교를 중국 정부에서 제대로 신경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중국인 한 달 평균 임금이 2000위안인데, 이 학교 선생님 두 분의 월급은 200위안이다. 그마저도 거의 1년 가까지 체납되고 있는 실정이란다. 그래서 두 분 선생님 모두 계속 이 마을의 선생님으로 남아있기 힘들어지고 계셔서, 몇 달 내로 떠나시게 될 것 같다고. 그러면 학교는 자연스럽게 문을 닫는다.
“이곳 학교 선생님이신 퐁 선생님은 정식 교사자격증이 있는 선생님이 아니에요. 혼자 공부하셔서 이 곳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셨죠. 따라서 지식이 깊지 않아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수업만 가능하다고 했어요. 아이들은 가르치는 것을 바로바로 빨아들일만큼 배움에 대한 열망이 큰데, 학교가 좋아지고 커지지는 못할망정 곧 없어질 예정이라니 마음이 답답할 따름이죠.”
또한 초등학교 고학년 수업은 외부에 있는 학교에 나가 들어야 하는데, 집안사정이 대부분 좋지 않다보니 부모들은 아이들을 외지로 학교 보낼 돈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아이들은 집안 경제 사정으로 학교를 가지 못하거나 제 나이보다 늦게 학교를 가는 경우가 많았다.
나눔으로 인연을 맺고 그것을 다시 나누다
권효성 씨가 처음 다른 이들과 나누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인연맺기학교 자원교사로 활동하면서다. 바람개비학교 등 2년 동안 자원교사로 활동했다. 자폐성 장애아동과 함께 주말학교를 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즐거웠던 일들이 더 많다. 그녀가 생각하는 나눔은 ‘생활 속 나눔’이다.
“나눔이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대학에 입학해서 지금까지 인연맺기학교 등 자원활동을 계속 해왔는데 ‘돕기 위해서 따로 내 시간을 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자원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알아가고 함께 지내는 것이 좋은 것일 뿐이에요.”
이번에 그녀는 중국에 다녀와서 또 많은 것을 느꼈다. 피곤하고, 언어소통도 잘 되지 않지만, 사람들의 순박함과 따뜻함을 느꼈고, 그 안에서의 사회적인 문제들을 마주했다. 60여명의 아이들이 있는 마을이지만, 아이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아파도 제대로 병원조차 가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있었던 용산참사를 보면서 중국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이 중첩됐다고 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느낀 것들을 함께 나눠야 할 때인 듯 싶었다.
“중국에서 만난 많은 분들은,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어디서든 자유롭게 주거할 수 있는 권리를 잃었고, 그로 인해 교육, 의료 등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것들을 보장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2009년인 지금까지도 전혀 나아지지 않은 채 자신의 자식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한센병이 다 나았고 자식들은 한센병 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센병이 낳은 ‘가난’이라는 이름이, ‘한센병 환자’ 또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차별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중국은 경제가 발전하고 있다지만, 그 발전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선생님 임금이 1년째 체납되어 학교가 없어지게 되었으니 쇠퇴하고 있는 것이 맞겠다.
순박한 미소를 지니신 마을 사람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캠프참가자들 덕분에 정말 즐거운 캠프였다. 그래서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 따뜻함과 웃음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마을분들이 처한 상황, 그것을 전혀 개선할 의지가 없는 중국 정부에 대한 답답함과 씁쓸함도 크다.
중국에서 돌아온 직후 터진 용산참사 추모집회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주거권’을 침해하려다가, ‘주거권’을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을 죽인 정부는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집회를 강경하게 진압하기만 하려한다. 이러한 우리나라 정부의 모습으로 인해 중국에서 느낀 씁쓸함과 답답함은 더욱 커지고 있다. ‘주거권’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주 중의 하나이건만,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어째서 그 권리를 보장받기가 이리도 어려운 걸까.” - 돌아와서 쓴 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