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미 대통령 취임식 중 가장 추운 날로 꼽혔던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이라는 역사성에 걸맞게 크고 작은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다.
취임식장인 국회의사당과 링컨 박물관 사이의 장대한 공원인 내셔널 몰 (National Mall)을 가득 채운 1백만이 넘는 군중들은 새로운 미국에 대한 그들의 갈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자 그 자체로서 취임식 최대의 장관이었다.
한편 세계적 거장들인 요요마, 펄만 등이 연주한 아름다운 4중주의 선율이 실은 너무 추운 날씨에 피아노 줄이 끊어질 것을 염려해서 이틀 전에 녹음해 놓은 것이었다거나, 안내 경관의 실수로 수 백 명의 하객들이 식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몇 시간 동안 식장 주변 지하 통로에 머물러 있었던 사건, 그리고 벌써부터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흠뻑 받고 있는 두 딸 말리아와 샤샤가 취임식에 입었던 중저가 브랜드 의류인 제이크루 (J. Crew)가 취임식 후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는 소식 등은 취임식 이후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나누는 소소하지만 재밌는 에피소드였다.
취임식 일정 중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 순서라 할 수 있는 취임 선서에서는 이를 주관한 연방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선서 문구를 뒤집어 읽는 바람에 오바마가 순간 당황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비춰지기도 했다. 어찌 보면 사소한 실수였지만 헌법 위반이라는 빌미를 남기지 않기 위해 다음날 기자들 앞에서 다시 취임선서를 했으니 가볍지만은 않은 해프닝이었다. 심지어는 부시 대통령 재임 중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되었을 때 그의 강한 보수적인 입장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던 과거 때문에 로버츠 대법원장이 개혁적인 흑인 대통령을 골탕 먹이려 고의로 그랬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링컨식의 통합의 정치
이 역사적 취임식 전반을 관통한 정신 혹은 주제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링컨 정신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작년 11월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오바마는 계속해서 인종 간, 정파 간 통합을 통한 하나의 미국을 실현하자고 역설했다. 오바마와 동일하게 일리노이주 출신의 정치가였던 링컨이 남북전쟁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도 불구하고 그 후 미국을 하나로 묶어 냈던 그 통합의 리더쉽을 다시 구현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지의 표현으로 1861년 링컨이 취임식을 위해 기차로 워싱턴 디시까지 이동하면서 각 지역의 시민들과 함께 했던 것을 본 따 취임식 직전인 1월 17일 미국 최초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를 출발하여 부통령인 조 바이든의 지역인 델라웨어주 윌밍턴과 메릴린드주의 볼티모어를 거쳐 워싱턴에 이르는 기차여행을 추진했다. 1월 18일에는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에서 비욘세, 어셔, U2 등 세계적 팝스타들이 참여한 “우리는 하나” 라는 콘서트를 열었고 취임선서에 사용한 성경도 링컨이 취임식에서 사용했던 것을 가져왔다.
링컨 따라 하기는 이런 상징적인 행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공화당 의원들과 적극적인 대화와 만남을 진행하는 한편 정부 각료 구성에 있어 국방, 교통, 상무 장관 등에 잇따라 공화당 소속 인사들을 지명했다.
부시정부와 단절하기
물론 오바마가 링컨 식의 통합의 정치를 외치고 있지만 전임 부시 정권이 8년 동안 시행해 온 보수적, 일방주의적 정책들과 단절하는 것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부시 정부에서 계속 논란이 되어 왔던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쇄와 고문 금지 등을 과감하게 선포하고 부시 정부가 적대적인 정책으로 일관해 왔던 이란, 북한 및 이슬람 진영과의 대화 의지를 분명하게 표명했다.
환경 분야에서도 비록 출발 단계이기는 하나 명료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대응 정책의 변화이다. 지난 부시 행정부 8년은 기후 변동으로 인한 임박한 파국에 대한 세계적 대응이 절실한 시기였으나 화석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계의 로비에 철저히 휘둘린 부시 정부와 산업계의 엄청난 재원을 바탕으로 복잡한 과학 논쟁을 유발하여 기후 변동 문제의 실체를 가리는데 힘을 쏟은 일부 과학자들의 방해로 세계는 온실 가스 획기적 감축이라는 전 인류적 과제를 조금도 진정시키지 못한 채 허송하고 말았다.
오바마 정부는 취임식 이후 일주일 만에 그간 캘리포니아주의 보다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프로그램을 담은 규제정책을 가로막고 있던 미연방 환경청 (EPA)의 조처를 해소하도록 지시했다.
LA 스모그 문제로 상징되듯 전통적으로 대기 문제가 심각했던 캘리포니아주는 자동차 배기가스나 에너지 효율성 규제에 있어 늘 연방 정부의 기준 보다 더 강력한 규제 정책을 시행해 왔고 미국의 ‘대기청정법’은 연방정부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런 관례가 부시 행정부에 의해 무시되었던 것이다. 미 환경청은 연방정부의 규제가 더 효율적이라는 등 구구한 변명을 동원하며 캘리포니아주의 규제정책을 수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자동차 산업과 에너지 산업계의 압력에 의한 것임은 누구나 짐작하는 일이었다. 오마바 정부는 이를 바로 잡은 것이다.
녹색 희망이 될 것인가?
물론 세계 최고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이를 감축하기까지 가야할 길은 참으로 멀다. 무엇보다 온실가스 의무 감축 비율과 시한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적극적인 역할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와 함께 자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와 정책 자문 그룹이 제시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안은 그린뉴딜로 명명되는 일련의 프로그램들이다.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른 정책들과 함께 빌딩, 자동차등의 에너지 효율화 및 태양력 풍력 등 재생에너지 개발 등 기후 환경 분야의 인프라 투자를 통한 소위 녹색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기후 문제에도 대응하고 경제도 살리겠다는 구상이라 보여 진다.
그런데 이 정책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비관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인류 최대의 환경 재앙을 예고하는 지구온난화 문제가 근본적으로 과학기술 문명과 자본주의 체제의 결합물인 산업주의의 산물이라 할 때 이 문명의 특징인 무한 성장과 소비 시스템에 대한 근본 성찰이 없이 경기 회복 대책 수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많은 경우 재생에너지 산업이라는 것도 지금까지 인류가 향유해온 엄청난 에너지 소비 욕구를 전혀 손상 받지 않으면서 환경에 덜 부담이 되는 에너지를 찾고자 하는 시도일 따름이다. 지금의 산업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화석연료 중심의 과학 기술이 불러일으키는 생태적 위기를 결국은 또 다른 획기적 기술과 경제 성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소위 ‘중산층 환경주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생태적 위기는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향한 산업자본주의의 무한 질주가 세계화를 통해 지구촌 곳곳으로 침투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세계적 경제위기를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근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한 호흡 쉴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의 지적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오바마의 미국이 과연 이러한 근본적 전환의 길을 향해 한발자국이라도 움직여 줄 지 아직 확신하기 힘들다. 비록 같은 녹색 뉴딜을 구호로 하면서도 전국을 파헤치는 토목 공사를 들이대는 정부와 비교한다면 본질적 차이가 있음에도 말이다.